체온 38도의 공포와 기후 위기 네팔 홍수로 본 지구의 경고

38도 열탈진이 알려준 한번의 서늘한 공포, 네팔 대홍수로 본 지구의 3가지 경고(essay)

Last Updated on 2026년 09월 01일 by 위토리즈

숨이 턱턱 막히는 열기 속에서 이마로 쉴 새 없이 땀방울이 흘러내리던 어느 오후의 일이었습니다. 핸드폰에서는 연신 폭염경보를 알리는 긴급 재난 문자가 울려 퍼지고, 발을 딛고 선 아스팔트 바닥에서는 아지랑이와 함께 뜨거운 열기가 훅훅 밀려 올라왔지요. 야외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움직여야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눈앞의 풍경이 미세하게 일렁이며 핑 도는 어지러움이 찾아왔습니다. 급기야 식용유 한 컵을 마신듯이 명치끝이 기분 나쁘게 니글거리기 시작해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더군요.

다급한 마음에 식은땀을 흘리며 근처 약국으로 뛰어 들어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놀란 약사님이 건네준 체온계로 열을 재어 보니 화면에 찍힌 숫자는 무려 38.3도였습니다. 평소의 체온보다 고작 1.5도 남짓 올랐을 뿐인데, 몸이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고통과 무력감은 상상 이상으로 버거웠어요. 그 미미한 숫자의 상승 앞에 묵묵히 버텨오던 단단한 일상이 이토록 맥없이 무너져 내리고 쓰러질 수도 있다는 것에 깊은 공포감마저 느꼈던 순간이었습니다.

네팔 대홍수로 본 지구의 경고: 웅장하지만 부분적으로 녹아내린 만년설 봉우리 옆으로 흐릿하고 물에 잠긴 계곡을 항공에서 내려다보는 광활한 풍경.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
웅장하지만 부분적으로 녹아내린 만년설(ai생성)

그날의 서늘했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저녁 뉴스 화면 너머로 쏟아지는 기후 위기 네팔 홍수 소식을 가만히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무자비한 흙탕물에 잠긴 산간 마을과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무너져 내린 도로를 멍하니 바라보며, 문득 제가 겪었던 그 38도의 끔찍한 열탈진이 지구라는 거대한 생명체 위에서 똑같이 벌어지고 있구나 싶었어요. 거센 물살이 평범한 일상을 집어삼키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참혹한 현장은, 마치 극심한 열병에 시달리다 못해 몸서리치는 지구의 비명 같아 가만히 화면을 보다가 마음 한구석이 아려 왔습니다. 무엇보다 예고 없이 밀려든 거대한 재난 속에서 스러져간 고귀한 생명들과,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다친 네팔의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부디 더 이상의 희생 없이 다친 이들이 하루빨리 평온을 되찾기를, 깊은 슬픔에 잠긴 유가족들에게 작게나마 닿을 수 있는 위로가 전해지기를 조용히 빌어보게 되네요.

약국 한편 의자에 기대어 거친 숨을 고르던 날, 단순히 뙤약볕에 오래 있어 더위를 먹은 것인데 왜 머리가 아픈 것을 넘어 위장부터 그토록 심하게 고장이 나버렸는지 처음에는 몹시 이상했습니다. 나중에 몸을 추스르고 찬찬히 찾아보니, 참 신기하게도 그것은 제 몸이 살기 위해 벌인 아주 치열하고도 고단한 방어 작전의 결과였더군요. 인체가 폭염 속에서 체온이 38도를 넘어가게 되면, 생존을 위해 열을 밖으로 빼내려 혈류를 피부 표면으로 집중시킨다고 합니다. 피부 쪽으로 열을 식히는 데 온 에너지를 쏟다 보니 자연스럽게 위와 장으로 가야 할 피가 턱없이 부족해지고, 결국 소화 기관이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르게 되는 것이지요. 속이 지독하게 니글거렸던 건, 위장이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없으니 제발 멈춰서 쉬어 달라고 온몸으로 보내는 뚜렷한 폭염 열탈진 증상이었던 셈입니다.

지금 끔찍한 기후 위기를 겪고 있는 지구 역시 이와 완전히 똑같은 붕괴의 과정을 밟고 있는 듯합니다. 네팔 홍수로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생태계를 보며, 극지방 빙하의 소멸이 곧 지구의 체온 조절 중추 마비라는 생각이 스쳤어요. 본래 북극과 히말라야의 웅장한 만년설은 태양열을 우주로 반사해 지구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거대한 거울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하지요. 하지만 이 빙하들이 무서운 속도로 녹아내리면서 짙은 색의 바다와 땅이 훤히 드러나고, 태양열을 반사하기는커녕 그대로 흡수하는 치명적인 악순환이 시작되었습니다. 스스로 온도를 낮출 수 있는 체온 조절 시스템이 완전히 고장 나버린 것입니다.

사람의 몸이 36.5도라는 좁고 익숙한 울타리 안에서만 무사할 수 있듯, 지구 역시 정교한 항상성(Homeostasis)의 균형 위에서만 건강한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지구는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자정 능력이 한계치를 아득히 넘어선, 항상성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기후 위기로 촉발된 네팔 홍수 사태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극단적 가뭄과 걷잡을 수 없는 대형 산불은 마치 과열된 신체에서 주요 장기들이 차례로 멈추는 다발성 장기 부전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신체의 하나의 장기가 제 기능을 잃으면 다른 장기가 그 부담을 힘겹게 떠안게 되고, 결국 한계에 부딪혀 연쇄적으로 쓰러지게 됩니다. 예전에는 그저 국지적인 기상이변으로만 여겼던 먼 나라의 일들이, 마치 염증 반응이 통제 불능으로 번져 전신 쇼크가 오는 급성 패혈증(Sepsis)처럼 전 지구적인 연쇄 재난으로 무섭게 번지고 있는 셈이지요. 중증 열사병으로 인해 전신의 다발성 장기 손상이 일어나는 것처럼,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내린 여파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네팔의 깊은 산간 마을을 덮치고, 그곳의 참담한 비극이 다시 우리가 숨 쉬는 이 땅의 날씨와 평범한 일상을 뒤틀어 놓습니다. 거대한 생태계 안에서 모든 생명과 자연은 보이지 않는 핏줄처럼 끈끈하게 이어져 있으니까요.

고작 1.5도. 일기예보를 볼 때는 그저 조금 덥겠거니 하며 가볍게 넘길 법한 그 미미한 숫자가, 제 몸 안에서는 삶의 균형을 맥없이 뒤흔드는 아득하고 험난한 경계선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폭염으로 열탈진 증상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지구의 온도 역시 그 치명적인 임계점을 향해 위태롭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화면 속 거친 흙탕물에 휩쓸려 가는 네팔 홍수의 참상을 가만히 지켜보며, 이것이 그저 안타까운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위급한 열병의 증상처럼 다가와 마음이 몹시 무거워집니다.

무심코 마시는 시원한 물 한 모금이 당장의 갈증을 채우는 것을 넘어 내 안의 온도를 다독이는 조심스러운 과정이듯, 어쩌면 지금 우리는 지구의 뜨거운 이마에 서둘러 물수건을 얹고 열을 내려야 할 마지막 골든타임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난히 길고 잔인했던 여름의 끝자락, 창밖으로 쉴 새 없이 밀려오는 끈적하고 후끈한 공기 속에서 온몸에 붉은 경고등을 켜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거대한 생명체의 희미한 맥박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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