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깎아 만든 마음의 안식처 벽조목 팔찌

삼재의 시기를 견디게 해준 벽조목 팔찌, 마음을 깎아 만든 1개의 단단한 안식처(essay)

Last Updated on 2026년 09월 01일 by 위토리즈

책상 위로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사이로, 이따금 묵직하고 뭉툭한 나무 부딪히는 소리가 낮게 섞여 듭니다. 손목에 감긴 짙은 다갈색의 나무 팔찌가 움직일 때마다 만들어내는, 건조하면서도 차분한 마찰음이지요. 가만히 하던 일을 멈추고 반들반들해진 알들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 넘겨 봅니다. 처음 제 손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제법 거칠었던 표면이 어느새 사람의 체온과 땀, 그리고 일상의 흔적들을 머금고 부드럽게 길들어 있습니다. 형광등 불빛을 받을 때마다 은은하게 감도는 벽조목 팔찌의 검붉은 광택을 보고 있으면, 어지럽게 얽혀 있던 생각의 타래들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며 가라앉는 기분이 드네요. 시원하면서도 묘하게 온기가 느껴지는 이 작은 물건은, 이제 제 일상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조용한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직접 깎아 만든 벽조목 팔찌. 진한 갈색과 검붉은 광택이 비친다
직접 만든 벽조목 팔찌

이 묵직한 물건을 제 손목에 들이게 된 것은 몇 해 전, 유난히 마음의 짐이 무겁게 느껴지던 시기의 일이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삼재가 시작된다는 해였는데, 꼭 미신을 맹신해서라기보다는 유독 짙게 낀 안개처럼 막연한 불안감이 일상을 맴돌았습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답답한 날들이 이어졌고, 밤이 깊어질수록 머릿속을 맴도는 상념들로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 잦았습니다.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거창한 해답을 찾기보다는 그저 스스로 내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작고 단단한 닻 하나가 필요했나 봅니다. 그래서 이미 예쁘게 완성되어 매장에 진열된 팔찌를 사는 대신, 투박한 벽조목 막대 하나를 구해다 늦은 밤 책상 앞에 앉아 직접 조각칼을 들고 깎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칼끝이 나무에 닿을 때마다 전해지는 단단하고 끈질긴 저항감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네요. 서툰 솜씨로 모서리를 다듬고, 비뚤비뚤한 조각들을 하나하나 둥글게 깎아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긴 노동이었습니다. 손끝이 욱신거리게 아려오고 나무 부스러기가 사방으로 튀는 와중에도, 나무를 깎아내는 그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 자체가 묘하게도 마음속의 불순물들을 덜어내는 의식처럼 느껴졌습니다. 가끔 조각칼이 엇나가며 아찔한 상황이 오기도 했지만, 공기 중에 훅 끼쳐오는 짙은 나무 향기를 맡고 있으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마저 들었으니까요. 스탠드 불빛 아래서 조각칼을 쥔 손에 힘을 주며 고요한 밤을 지새우다 보면, 날카롭고 뾰족했던 내면의 불안들도 조금씩 둥글게 깎여나가는 듯하였습니다. 깎고 다듬고, 거친 사포와 고운 사포를 번갈아 가며 문지르는 기나긴 시간 동안, 막연했던 두려움은 점차 둥글고 매끄러운 형태로 제 손끝에서 여물어 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나무가 지닌 내력 자체가 참 신기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조용히 찾아보니 벽조목, 즉 벼락 맞은 대추나무는 수천만 볼트의 전기를 견뎌낸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원래도 단단한 대추나무가 벼락의 엄청난 에너지를 맞는 순간, 수분이 급격히 증발하고 조직이 극도로 수축하면서 물에 가라앉을 정도로 밀도가 높고 묵직한 상태로 변한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이 나무가 지닌 맹렬한 불의 기운이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액운을 막아준다고 믿어왔던 이유도, 단순히 번개라는 자연현상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그 혹독하고 처절한 순간을 온몸으로 견뎌내고 더욱 단단해진 강인한 생명력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제 손목에 감긴 이 조그만 나무 알들이 실제로 어떤 불운을 물리쳐주는 든든한 방패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수만 볼트의 벼락을 맞고도 잿더미로 타버리거나 꺾이는 대신, 속을 바짝 태워가며 기어이 물에 가라앉을 만큼 단단해진 그 궤적만큼은 퍽 깊은 사색을 안겨줍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크고 작은 삼재, 혹은 피할 수 없는 시련들이란 어쩌면 맑은 하늘에 갑작스레 떨어지는 예고된 낙뢰와도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그 충격을 묵묵히 받아내고 견뎌내어, 끝내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벼려내는 수밖에 없다는 묵언의 다짐을 이 작은 팔찌를 통해 조용히 되새겨 보게 되네요. 불에 탄 상처를 훈장처럼 품고 돌덩이처럼 굳어진 이 나무처럼 말입니다.

다시금 손목을 가볍게 흔들어, 묵직하게 피부에 닿는 나무의 질감을 천천히 느껴봅니다. 내가 직접 깎고 다듬으며 보낸 고요한 시간과, 벼락을 견뎌낸 나무의 인내가 조용히 맞닿아 있는 기분이 드네요. 내일도 어김없이 크고 작은 파도가 일상을 흔들고 예상치 못한 비바람이 불어오겠지만, 그때마다 손목에 감긴 이 서늘하고 단단한 무게가 가만히 마음의 중심을 잡아줄 것입니다. 짙은 다갈색 알맹이 하나를 엄지와 검지로 꾹 쥐어보는, 참으로 고요하고 차분한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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